한국전쟁을 결심한 트루먼 대통령의 초청을 받다 안녕하세요. 독자여러분, 저는 제2의 한국전쟁을 막기 위해서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 미주리로 갔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미주리주 상원의원을 거쳐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의 부통령이 되고, 루스벨트가 암살당하자 33번째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참전을 결정한 대통령이 바로 해리 트루먼 대통령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마침표를 끝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는 영화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를 결정한 장본인입니다.
저는 그가 어떻게 한국전쟁을 결정하게 되었고, 외교에서 어떠한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세계 최강인 미국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의 선택과 전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외교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 전략을 찾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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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대통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을까요? 왜 당시만 해도 가깝지 않았던 한국(거리상으로 만 킬로 이상 되는)전쟁에 참전했을까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 독일, 이탈리아는 패전국이 됩니다. 미국은 중국, 영국, 프랑스, 소련과 함께 승전국이 됩니다.
그 이후에 미국의 가장 큰 상대는 `소련`이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확장을 두려워했습니다. 독일의 베를린이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리스와 터키등 국가가 공산주의로 넘어 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었습니다. 유럽이 공산주의화 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련의 공산주의를 모방하려는 움직임이 큰 파도와 같았습니다. 파도처럼 거세게 확장되는 소련의 힘을 막기 위해서 베를린을 지원했습니다. 미국의 두려움은 유럽뿐만이 아닙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공산화를, 걱정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후, 중국도 민주 정부를 표방했던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일어났고, 결국 공산당이 1949년 새로운 중국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참전에는 여러 결정의 요인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은 아시아 전역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 진영을 확장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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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트루먼 대통령의 3가지 결정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은 패권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될 때, 트루먼 대통령은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3가지 결정을 합니다.
첫째는 외교 대전략입니다.
트루먼 독트린 (고립주의에서 적극개입주의로 전환)
트루먼 대통령은 공산주의 진영이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막고 자유주의를 지원하는 외교 대전략을 펼쳤습니다. 그는 1947년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 위한 외교정책을 의회에서 발표합니다. 그것이 바로 트루먼 독트린입니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은 고립주의를 고수하던 미국의 대외 정책은 더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외교 전략을 바꿉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의 확장에 전면적인 억제와 대립이 노선이 만들어집니다.
미국과 트루먼 대통령의 이 결정으로,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트루먼 독트린을 실행시킬 두 가지 전략을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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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경제외교입니다.
마셜플랜 (트루먼 독트린의 실행 방안1)
마셜 플랜(Marshall Plan) 또는 유럽 부흥 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동맹국의 경제를 재건하고 부흥시키기 위한 트루먼 독트린의 경제실행방안입니다.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조지 마셜이 설계하고, 트루먼 대통령이 결정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등 경제 상황이 황폐했습니다. 미국은 서독을 시작으로 그리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의 경제부흥을 위해서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원합니다.
지금의 유럽공동체, 그리고 서유럽국가의 재건은 이 마셜 플랜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경제재건과 부흥에 대한 목표도 있었지만, 트루먼 대통령의 대전략인 공산주의 확장억제에 대한 미국 외교정책 원칙의 반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소련과 동유럽 위성국들은 거부했지만, 서유럽은 미국이 내민 구명줄을 곧바로 부여잡았다. 영국과 프랑스, 서독 등 16개국은 다음달 경제 재건안을 냈고, 이들 나라에는 이듬해 4월부터 4년간 총 130억달러(현재 가치 1,300억달러)가 투입됐다. 유럽 경제는 빠르게 부활했고, 마셜은 195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대성공이었다." (한국일보) 그리고 지금은 미국의 최대시장 중 하나가 바로 유럽연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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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군사외교입니다.
나토(NATO)창설 (트루먼 독트린의 실행 방안2)
트루먼 대통령은 경제외교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군사 외교를 시작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군사 안보 동맹을 시작했습니다. 트루먼 독트린의 목적으로, 경제재건을 넘어서 군사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로, 트루먼 대통령은 집단 안보 체제 Nato의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의 내용은 많지만, 보편적인 집단 군사 안보 체제라고 보면 됩니다. 이 군사 동맹체의 요지는 만약 나토 회원국의 무력 행사는 나토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그에 상응하는 집단적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NATO의 위상이 다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74년 전에 만들어진 NATO가 이렇게 지금까지 세계 군사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서, 세계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트루먼 정부는, 트루먼 독트린을 기반으로 경제외교와, 군사외교를 통해서 동맹국들과 함께 소련의 공산주의를 집단으로 억제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1. 외교대전략(적극적개입)과 2. 경제지원(서유럽) 및 3. 군사동맹(나토)라는 선택과 결정이 지금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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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중 위기시대, 대한민국의 세계전략
대한민국의 경제외교, 군사 외교, 그리고 대전략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한반도의 위기를 맞고, 세계 3차 세계대전을 막으려면 우리에게도 세계전략과 외교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대전략과 경제, 군사, 경제, 통일, 분야의 전략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계전략이 있을까요?
어느 신문에서도 논문에서도 대한민국의 세계전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외교 전략은 친미냐 친중이냐 친일이냐, `색깔 외교`적 측면이 강합니다. 외교는 사실 모든 것(경제, 군사, 에너지, 기술, 우주, 기업, 환경, 식량 등)인데요.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사회생활에도 학교에서도 적이 많으면 생활이 힘든 것처럼요.
이때 필요한 것들은 두 친구가 피 안 흘리고 싸우지 않게 중재하는 게 우리 외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위해서도요.
미국과 중국의 판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지도를 넓혀서 미·중의 경쟁과 분쟁을, 협력과 중재하는 것을 설계해 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그게 대한민국 그리고 한반도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세계 전역에 피해를 줍니다.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다들 미·중 경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다며 어려워하는 국가들이 태반입니다.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도 연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색깔 외교를 넘어서 세계 외교로 가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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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순간, 단호한 결정
트루먼 대통령은 취임하고 나서 하루하루 세계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는 그 와중에서 매 순간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지구본을 가지고 결정했습니다.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 한국전쟁 참전, 트루먼 독트린, 마셜플랜, 집단 안보 체제 NATO까지 그의 선택과 결정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무덤 앞에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미국으로 초대해주어서 고맙다고,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공존을 만들고 다시 한번 무덤으로 찾아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순간, 해리 트루먼 도서 박물관의 직원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 맞죠? 지수 킴, 당신이 해리 트루먼 대통령 생가에 꼭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일하고 고민하고 결정했던 장소입니다."
저는 일정에 없던 그의 생가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 생가에 가서, 직접 트루먼 대통령의 생각 그리고 고민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과거 그의 결정의 순간을, 옆에서 보고 싶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을 고대하는, 김지수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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