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임진각에서 용산대통령실까지 10만 보의 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봄이 오고 있습니다.
원래 서로 병든 남과 북이라는 제목으로 책에 내용을 전하려고 하다가, 주말에 분단된 우리 현실을 넘어서 희망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임진각에서 용산전쟁기념관까지 약 70킬로 걷기를 도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을 우리 독자 여러분께 공유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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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걷는가?
전쟁의 위기, 그리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당장의 전쟁, 그리고 위협이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은 있지만, 많은 시민과 친구, 동료는 전쟁의 위협을 직접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전쟁은, 상대국이 예측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시민으로서 한 걸음 내딛으면서 평화의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동시에 분단된 곳의 상징인 임진각, 그리고 자유의 다리를 보면서 다시 저의 꿈을 다지고 싶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더 큰 영감과 비전을 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춥고 힘들었습니다. 제주 올레길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바람이 불었고, 눈과 비가 오고 걸어오는 길이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잘 다니는 곳이 아니 새와 동물 그리고 논밭을 주로 봤습니다.
홍대에서 버스를 타고 온 임진각은 2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여기서부터 용산은 일단 직진으로만 와도 20시간이 넘게 걸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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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현실을 직면하다.
임진각의 철마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우리 시민에게는 통일은 낡은 기차가 되었구나. 우리는이제 모두가 통일이 꿈이 아닌 세상에 있다. 이제 새로운 기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진각에 제가 간 날, 식당과 주위에는 외국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보다 외국에서 더 분단의 현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걸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습니다.감사하게도 구간마다 같이 함께 해준 동료가 있었습니다. 새삼, 추운 길과 꼬불꼬불 길에서 함께 걷는다면 길이 어렵지 마음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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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각에서 통일동산으로 오면서...
춥고, 꼬불꼬불 그리고 연결되지 않은 길을 걸으며 생각을 했습니다. 평화누리길이 왜 평화로운 분위기가 없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길이 너무 많고, 차가 다니는 길이랑도 많이 겹칩니다.
좌우 옆을 살피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 있는 다소 평화롭지 않은, 지금 한반도의 모습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길 위를 걸었습니다. 파주에는 너무 많은 철책선이 있어서, 그리고 군사지역이 있어서 사진만 잘 못 찍어도 징역 3년에 ,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표식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날씨도 추웠지만, 안보의 추위는 더 살얼음 같았고, 서울과 경기 남부와는 사뭇 다른 긴장이 느껴졌습니다. 안보와 가능성의 경계도 지역마다 온도가 달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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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달랐던 통일 동산의 모습
드디어 파주 헤이리 마을 통일 동산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한 통일 동산은 주말에 아이들이 나와서 노는 통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평화의 모습을 상상하며 걸었습니다.
근데 그 상상이 참혹한 현실이 되기까지는 도착하고 불과 몇 분 안 걸렸습니다. 통일 동산에 도착한 광경은 아이들이 주말에 뛰어노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주위에는 통일보다는 공장과 모텔이 가득 찬 공간이었습니다.
단편적 일 수 있지만 이렇게 우리의 평화 이슈와 통일이슈가 시민의 삶과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온종일 멍멍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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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것 말고, 아프고 치열한 삶에서 시작
아침 이른시간에, 파주의 어느 시골 길에서 어느 70~80세로 보이는 할머니를 봤습니다. 갑자기 옛날 저의 친할머니 생각도 났고요, 할머니께서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시고, 장바구니 수레를 의지하시며, 차 길을 건너고 있으셨습니다. 혹시라도 혼자 사시면, 어떻게 돈을 버시고, 아프시면 어떻게 병원으로 가시지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본, 빌라에 붙어있는 월세와 반전세, 깔세 광고표지판, 그리고 폐허가 된 집, 길가와 논밭에 너부러져 있는 수많은 플라스틱 막걸리병과 쓰레기들 봤습니다.
다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통일이라는 구호로, 그리고 미래라는 거창한 이유도 새벽에 어렵게 몸을 가누며 재활용되는 용기를 줍고 있던 할머니의 삶이 변할 수 없다면, 그건 아무리 멋져 보이는 아젠다도 신기루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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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앞으로의 한반도 문제도, 평화의 문제도, 협력의 문제도 결국 할머님의 삶, 농어촌에서 종사하는 어르신의 삶, 아파트로 이주하는 신혼부부와 청년들의 삶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의 삶, 공실이 되어버린 건물들. 더딘 걸음이었지만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2200번 버스를 타고 한 번에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더딘 덕분에, 세상의 많은 문제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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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에서 다시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길을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행주산성 역사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고양시에 있는 행주산성 역사공원은 2016년 조성되었습니다. 1970년대 무장 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되었던 군 철책을 최초로 제거하고 만든 공원인데요. 전쟁과 분쟁의 상징이었던 철책이 사라진 이곳에서 평화를 즐기는 시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에서 행글라이더를 연습하는 청년, 반려동물과 뛰어노는 가족,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부부, 손녀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어르신까지 평화 위에 삶을 즐기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평화가 우리 삶에 주는 이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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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만난 시민분들은 저에게 한반도가 연결되면, 파주가 최대 수혜지역이 될 것이면서, 한반도 교통의 요충지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파주에서의 기회의 장벽이 열리길 희망하는 시민의 열망과 기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삶은 평화 위에서 지속 가능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은 평화 위에서 성장 가능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평화가 그 밑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계속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 무엇보다 소중한 평화를 지키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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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길이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
오는길에 저는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지, 이 길은 내가 왜 가야 하는 지 문득 생각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한 생각, 한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답이 없다고 하는 이 길을 나는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기회가 확장되는 세상을 꿈꾸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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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료와 함께 하면서,
지금 내딛는 저의 한 걸음이 열 걸음, 백 걸음이 되고 , 우리가 함께 걸으면 100만 걸음이 되고 길이 만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길이지만 평화가 정착하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요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걷는 것만큼 큰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이 길을 같이 걷길 바라봅니다. 독자여러분과도 언젠가 평화로운 길 위에서 걷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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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리의 미래를 향해서 저는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겠습니다.
같이 함께 해주신 동료와 친구분께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길 위로 서는, 행동지수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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