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한반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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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이야기_우린 반드시 하얼빈으로 간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서 쏜 그 총알은
2025. 1. 21.
한반도이야기_우린 반드시 하얼빈으로 간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서 쏜 그 총알은
김지수의 한반도이야기#83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벌써 2025년의 1월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실리콘밸리부터 LA,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디씨까지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 인사들을 만났고요.
2025년에는 미국과 중국을 함께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반도와 만주땅 그리고 독립운동
한반도의 역사를 찾아보니, 중국과의 깊은 연관성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이 국내에서 어려워져 대부분의 독립투사는 중국으로 그리고 만주 땅으로 독립운동의 본거지를 옮겼습니다.
하얼빈에서 만주를 보다
그래서 말인데요. 독립투사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만주벌판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한 의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
그래서 첫 번째 목적지로 만주땅이자 동북 삼성의 맨 끝자락에 있는 하얼빈으로 선택했습니다.
진짜 하얼빈 Harbin 哈尔滨
도착한 하얼빈은 너무 추웠습니다.
영하 20도
가 되는 추위는 제가 인생에서 겪어 보지 못한 한기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온몸에서 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 이 추위를 우리 독립투사들은 만주땅을 맨몸으로 이겨냈구나."
" 나른해질 시간과 여유가 없구나."
" 시베리아에서 오는 한기와, 만주에서 독립을 꿈꾼 선배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
저는 발걸음을 돌려,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했던 역사적 장면으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했던 그 장소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위치와 이토가 쓰러진 하얼빈역, 이곳의 위치를 표기해 놨습니다.
미래를 만든 시간
1909년 10월 26일 오전 9:30
이토가 쓰러지다.
안중근 의사님이 이토를 살해한 이유
안중근 의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바로 독립이 오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증오보다는, 한 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불의와 맞섰습니다.
영화 하얼빈 그곳을 가다.
여러분 요즘 개봉한 영화 하얼빈을 기억하시나요?
대동강의 살얼음 판을 걷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지치고 쓰러지고 아파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그의 의지가 놀라웠습니다.
저는 질문합니다.
그는 왜 이토히로부미를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을까?
그리고 당시 시대의 상황은 어땠나?
세계는 그를 어떻게 평가했나.
이런 질문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세계적인 승리자 안중근
놀라운 것은 바로 하얼빈역 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중국정부가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역사와 이토살해의 동기, 당시의 상황과 안중근의 평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해 놨습니다.
아시아 제일 의협- 안중근 열사
당시에도 대국이었던 중국에서도 감히 할 수 없었던, 행동을 안중근 의사가 해낸 것에 대해서 중국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았던 안중근 의사님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톨스토이 타고르보다 콜럼버스와 안중근이 되기를 원한다.
저는 사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영웅으로만 국한해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알면 알수록 안중근 의사에 대한 저의 선입견이 깨졌습니다.
안중근 의사 생애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27살 을사늑약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서 중국 산둥 지방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재양성을 위해 돈의학교와 장흥학교를 설립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 등 여러 인사를 초청해서 교육과 계몽운동을 진행했습니다.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 안중근 의사
그리고 29살의 나이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서 청년회에 가입하고,
30살에는 대한의군을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31살의 나이에 우덕순 등과 함께 뜻을 모아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안중근은 글로벌 리더
안중근은 글로벌 리더였습니다.
안중근은 인재양성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습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꿈꿨습니다.
그래서 동양평화와 우리 조국의 독립된 미래를 위해서 항전하셨습니다.
대한의군 창모중장 안중근
그는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참모 중장직을 맡았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관할지였던 하얼빈에서 그는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그리고 꼬레아우라를 외쳤습니다.
러시아로 꼬레아우라는
대한독립만세라는 뜻입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 듯
그리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서 총구의 방아쇠를 제국주의를 향해 쏘았듯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나는 어디에 방아쇠를 당겨야 하나.
한강작가님께서 이야기하셨던,
죽은자가 산자를 살릴 수 있는 것처럼
안중근 의사님이 당긴 방아쇠 속의 총알 또한,
우리를 어딘가로 인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총구의 미래는 동양평화로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서 쏜 그 총알은 아직도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염원의 화살이 동양평화, 아시아의 평화 그리고 분단된 조국을 이어주는 연결이 될 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인생에도 안중근의사의 총알이 날아 왔습니다.
그의 열망이 저와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연결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꿈을 계승하고 싶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고 싶어 졌습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청년 안중근의 꿈은 죽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 꿈을 계승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의 다음 행선지를 미리 말씀드립니다.
청나라와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세계 패권을 다투었던 곳,
크게 연결한다는 뜻이 있는 도시입니다. 바로 대련(大连)입니다.
안중근의사님께서 동양평화론을 쓰면서 의거하신 그곳
뤼순감옥을 저의 몸과 마음을 향합니다.
대련에서 뵙겠습니다.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하얼빈 영화의 마지막 문구가 생각납니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드넓은 만주땅 하얼빈에서
코레아우라를 외치다
꼬레아! 우라!
Корея! Ура!
독립지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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