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꿈꾸었던 이곳 뤼순감옥에서 쓰는 편지 하얼빈 역에서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설 연휴 잘 보내시고 계신가요? 어제부터 눈이 엄청 내리고 있습니다.
민족대명절인 설 전날 여러분께 약속대로 안중근 의사가 의거하신 뤼순감옥으로 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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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에서 다시 뤼순감옥으로
왠지 모르겠는데, 뤼순감옥은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님께서 삶을 던진 곳이라면, 대련의 뤼순감옥은 삶을 불태우며 마감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어떻게 삶을 마감 하셨는지, 어떠한 역사적 책무를 끌어안고 있었는지 저의 눈으로, 저의 가슴으로 직접 느끼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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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꿈으로 향하여
그가 대한민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치면서 법정에서 싸우고 세상에 알린 곳 의와 불의의 편에서 의의 편에 선 것,
승리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의 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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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반사된 한반도의 물결
동방의 파리가 하얼빈이었다면 동방의 베네치아는 대련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대련까지도 불과 1시간 거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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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역사- 대련역 앞에서
광복과 독립을 염원하고 행동했던 민족의 투사가 지나간,
혁명을 꿈꾼 청년들의 고뇌와 투쟁이 연결된 이곳, 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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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앞 바다에서
엄청난 번화가, 그리고 대련항 앞에서 러시아와 청나라, 그리고 일본이 이곳을 통해서 세계에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바다를 가지는게 아니라 바다가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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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감옥은 너무 추웠다.
드디어 도착한 뤼순감옥.
제가 예상한 거룩함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일단 뤼순감옥 안이 너무 추웠습니다.
빛이 들어오질 않고, 안은 너무나도 추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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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아픔의 시간
하얼빈의 추위는 바깥에서 오는 추위라면, 대련 뤼순감옥에서오는 추위는 안에서 오는 추위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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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감옥은 너무도 추웠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한기가 저의 가슴까지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한국과 중국 애국청년들과, 독립운동, 항일 운동을 했던 열사들이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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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감옥은 너무나 한기가 넘쳤다.
죽음의 한기, 고독의 한기,
그리고 억울함과 아픔의 한기가 감옥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억울한게 죽은 영혼이, 한기의 혼이 되어 마치 우리에게 역사를 직면하라는 울림을 주었습니다.
"직면하라"
"기억해라"
"나아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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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감옥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와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길이 있는데 너무 따뜻한 빛이 저희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님 그리고 순국선열들께서 미소를 보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뤼순감옥의 밖은 너무 따뜻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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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가는 길
다음 건물로 이동하는 길은 새 소리도 들리고 햇빛도 따뜻하고 나무도 정돈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바로 사형장으로 가는 길 이었습니다.
우리 순국선열들께서 이 길을 걸어서 잠시 햇빛의 따뜻함을 느끼고
사형장으로 걸었던 그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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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이상의 진동
사형장 대기실에 들어갔습니다. 사형장 대기실은 더 추운 냉기와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안중근 의사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두려움 속에서 어떤 희망을 가지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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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리셔야 합니다.
그 마음을 알았을까요?
뤼순감옥 담당 관리자가 열쇠를 가지고 오더니
안중근 의사의 전시관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뤼순감옥은 어떻게 보면 안중근 의사의 특별 전시장으로 느껴질 만큼,
안중근 의사에 대한 스토리가 많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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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이끈 장소, 우리가 선택한 미래
저는 휘호를 보고 있으면서 그가 남기고 간 문구를 보면서 감동하고 있을 때, 저의 동료가 "지수님 여기" 이렇게 떨리는 눈빛으로 손짓했습니다.
또 다른 문구가 있나? 하고 자리를 옮겼는데 가장 슬픈, 그리고 역사적인 장소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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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안중근 의사께서 의거하셨던 곳입니다.
몸도 움직여지지 않고
마음도 멈췄습니다.
저는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현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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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용기와 도전이 역사를
하얼빈에서의 총알은, 이토의 가슴을 통과해서,
다시 저에게로 왔습니다. 다시 여기 대련에서 저의 심장을 관통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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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 의사는 사형선고 후 옥중에서 자서전과 동양평화론 집필에 몰두한다. 안 의사가 최후를 맞이한 샹양제(向陽街) 139호 뤼순감옥 터로 향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겨레의 큰 별 이회영, 신채호 선생도 이곳에서 옥사했으니 뤼순감옥은 민족혼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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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안중근의사의 마지막 총구의 종착역은 동양평화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총알은 이토의 가슴을 통과해서, 제국주의에 횡포에 경종을 울리고 다시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화살이 되어 우리의 가슴으로 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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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이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여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김지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게 됩니다.
삶과 죽음을 만납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요.
과거와 현재를 이을 수 없다면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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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하라"
"기억해라"
"나아가라"
역사를 계승한다는 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뤼순감옥에서 죽음을 넘어섰던 안중근, 신채호 그리고 수 많은 선배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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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을 완성하자."
미완의 동양평화론을 우리 세대가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쟁이 없는 사회,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아시아인들이 유럽연합, 미합중국처럼 연대해서 더 강해지는 사회
동양평화론에서나온 한국, 중국, 일본의 미래세대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동료와 함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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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하지마,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야.
그러던 도중 동료 한 분이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동양평화론에 대해서 혼자 생각하지말고
저의 생각을 정리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함께 만들어 가자고 제언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또다른 동료는 저에게 지금의 정치권에서 하지 못하는,
한국 미국 중국 친구들과 함께 동양평화론을 완성해 보면 어떻냐고 제언까지 해주셨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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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해보는거야, 우리가 직접.
그래서 다음 주에는,
안중근 의사 꿈인,
동양평화론을 완성하는 그 시작을 바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다음주, 미완의 동양평화론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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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유해
마지막에 뤼순감옥에서 중국담당자와 했던 말입니다.
왜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까?
"그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리더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
여러분이 그 리더가 되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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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도 보고가야해.
그래서 일까요? 담당자 분은 저희가 놓일 뻔한 유해발굴 사업 관련 전시장을 안내해주며,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그들도 함께 공유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우리 모두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 송환을 하는 그날의 장면을 생각하고 가슴에 담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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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하라"
총알은 나의 가슴속으로 그리고 동양평화론을 완성하자
가슴에 따뜻한 희망을 품는
희망지수 드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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